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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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눈빛' 광주·전남 보도사진전, 내달 6일 개막광주와 전남에서 활동하는 사진기자들이 지난 1년간 취재 현장에서 기록한 보도사진을 전시한다. 광주·전남사진기자회는 내달 6일부터 12일까지 광주신세계백화점 1층 갤러리에서 2024 광주·전남 보도사진전을 연다. '현장의 눈빛'을 주제로 작년 한 해 동안 광주·전남지역 일간지와 뉴스통신사 소속 사진기자들이 취재한 보도사진 80여 점을 선보인다. 같은 달 23일부터 열흘 동안 전남도청 윤선도홀에서 순회 전시도 이어간다. 6일 개막식에서는 1993년 아시아나 항공 추락 사고를 취재하다 순직한 박경완 기자를 기리고자 제정한 '박경완 기자상' 시상식이 열린다. 올해로 제19회째를 맞은 수상자는 조선일보 김영근 기자가 선정됐다. 김 기자는 118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전남 화순탄광의 마지막 출근길에 오른 광부의 모습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전시에는 할아버지인 전두환 씨를 대신해 5·18 유가족에게 사죄한 손자 전우원 씨, 정율성 공원 건립을 둘러싼 이념논쟁,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따른 시·도민의 반응 등을 현장에서 포착한 보도사진들이 전시된다. 올해 전시에는 한국영상기자협회 광주·전남지부 소속 동료 기자들이 제작한 영상 기록물도 함께 선보인다. 또 전시 안내 책자를 사진집 형식으로 제작해 소장 가치를 높인다. 전시장을 찾지 못하는 관람객을 위해 개막식 이후 광주·전남사진기자회 누리집(https://www.sajingija.co.kr/)에서도 온라인 전시를 한다. 김진수 광주·전남사진기자회장은 22일 "환희의 순간, 좋았던 일도 다시 돌아볼 수 있도록 전시 방향을 마련하고 있다"며 "사진기자 각자의 개성이 담긴 보도사진 작품을 부각하는데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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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978년 중국 인민출판사 발행 ‘정률성가곡선(鄭律成歌曲選)’최근 광주에 ‘정률성기념공원’ 설립 계획으로 보훈부와 광주시가 격돌하고 있다. 정률성은 김산과 연결되는 인물로 주목된다. 다음 김연갑의 ‘한국아리랑문화’에서 인용한다. "김산의 아리랑에 대한 인식은 어떤 계기에 획득하게 되었을까? 하나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었을 수 있다. 나운규와 같은 자연스런 계기이다. 둘은 일본과 중국 등의 항일단체나 모임 등에서 듣고 인식했을 수도 있다. 특히 영화‘아리랑’에서 깊게 인식하는 계기였을 수도 있다. 당시 의식있는 이들이 영화‘아리랑’을 통해 민요 아리랑의 저항성과 시대상을 반영한 영화의 힘에 영향을 받은바가 크기 때문이다." 셋은 음악전문가로부터의 학습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세 번째로, 1933년부터 중국에서 활동한 정율성을 남경에서 만나는데, 이로부터 아리랑을 받아들였다고 보는 것이다. 정률성은 12억 중국인에게는 익숙한 ‘연안송(延安頌)’과 ‘팔로군행진곡(八路軍行進曲)’으로 중국 최고의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1914년 전남 광주 출신으로 중국 현대음악의 대부로, 중국에서 1976년 작고 후, 중국 국립묘지에 안장된 인물이다. 1939년 영안에서 작곡한 ‘팔로군 행진곡’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하면서 ‘중국인민해방군가’로 인정된 노래다. 이 노래를 비롯해서 무려 360곡을 작곡했다. 이 중에는 중국의 대표적인 항일가요 ‘연안송’은 ‘중국 아리랑’으로도 통할만큼 유명한 노래다. 정률성은 1936년 5월 1일 ‘5월문예사’ 창립대회에서 ‘의용군행진곡’을 부르고 중국어로 설명하고 ‘아리랑’을 불렀다. -제가 이번에 부를 노래는 중국 가요가 아닌 조선의 노래 ‘아리랑’입니다. 이 노래는 조선 사람들이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즐겨 부르는 민족의 노래입니다.- 이상의 사실에 대해서는 주취도의 증언이 있다. "나청이 청년학생들의 심리를 틀어잡는 연설을 하고, 정률성이 ‘아리랑’이라는 비장한 곡조의 조선노래를 부름으로써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는 전투적인 친선이 맺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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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정율성음악축제 '오케스트라·신인음악회' 무대광주출신의 중국의 3대 혁명음악가 정율성 선생을 조명하는 음악축제가 펼쳐진다.광주문화재단은 27일부터 29일까지 빛고을시민문화관 2층 공연장에서 2021정율성음악축제의 일환으로 '정율성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신인음악회'를 선보인다고 25일 밝혔다.'정율성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27일 '관현악의 밤'과 28일 '실내악의 밤'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4개 대륙 클래식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된 '관현악의 밤'은 바그너의 '리엔찌 서곡'을 시작으로 소프라노 한예원이 정율성의 가곡 '매화를 읊노라', 도니제티의 오페라 광란의 아리아 중 '오, 달콤한 노래소리여 쓴 눈물을 흘렸네'를 공연하다.이어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와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연주한다. '실내악의 밤'은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의 수석 연주자들이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K.138', 슈베르트의 '콰르뎃자츠 c단조', 드보르작의 '현악4중주 12번 F장조 아메리칸'을 들여준다.29일 펼쳐지는 '신인음악회'는 지역의 음악대학 재학생들로 구성된 신인 음악인들이 성악, 관현악, 피아노, 기악 무대를 펼친다.또 전남대 국악과에 유학 중인 중국 유학생들도 참여해 한·중 전통 악기 연주, 정율성의 성악곡을 중국어로 부른다.2021정율성음악축제 현장 관람은 220명으로 제한되며 온라인을 통해 생중계된다.한편 2021정율성음악축제는 다음달 11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양림프로젝트'로 마무리 된다.광주문화재단 관계자는 "정율성음악축제는 중국의 3대 혁명 음악가로 칭송받고 있는 광주 출신 정율성 선생의 음악과 예술혼을 알리고, 아시아를 아우르는 국제적인 문화콘텐츠 발굴을 위해 2005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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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감성 가득' 광주서 23∼29일 정율성 음악축제중국 3대 음악가로 칭송받는 광주 출신 정율성(1914∼1976년) 선생의 음악과 예술혼을 가을 감성 가득 담아 즐길 수 있는 '2021 정율성 음악축제'가 오는 23일부터 29일까지 열린다.광주시는 양림동 오웬기념각, 우일선 선교사 사택 앞, 빛고을시민문화관, 이이남 스튜디오에서 정율성 음악축제를 온·오프라인으로 개최한다고 19일 밝혔다.오는 23일부터 24일까지는 '양림프로젝트–한국의 몽마르뜨: 양림의 鄭' 공연이 열린다. 비대면으로 열리는 이 공연은 정율성 선생이 유년시절을 보낸 양림동에서 금관 앙상블, 합창, 스트릿 댄스, 퓨전국악, 트로트 공연을 선보이며, 광주문화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공연은 예락(퓨전국악), 진이랑과 예술기획 밴드(트로트), 브래싱(금광앙상블),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 빛고을 댄서스(스트릿댄스) 등 지역 문화예술단체 총 5개 팀이 참여해 탁월한 상상력으로 새롭게 해석한 정율성의 음악세계를 선보인다.27일부터는 관현악의 밤, 실내악의 밤, 신인음악회를 빛고을시민문화관 공연장과 광주문화재단 유튜브 채널에서 관람할 수 있다.27일 열리는 관현악의 밤은 2021 정율성음악축제 추진위원인 변욱 지휘자(전 광신대 교수)를 중심으로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협연, 2021 광주성악콩쿠르 1위 수상자 소프라노 한예원 등 지역예술인들이 참여한다.28일은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수석연주자로 구성된 클래식공연, 29일에는 광주 관내 음악대학 재학생들로 구성된 신진 음악인들이 2021 정율성 음악축제의 대미를 장식한다.김준영 시 문화관광체육실장은 "광주 출신 정율성 선생을 기리는 음악제에서 가을밤 정취를 흠뻑 느끼시길 바란다"며 "코로나19를 극복하는 힐링의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한편 11월11일부터 18일까지는 이이남스튜디오에서 양림프로젝트 전시가 열린다.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광주가 낳은 세계적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작가와 연계한 '정율성, 미디어아트를 만나다' 전시와 함께 개막공연으로 광주시립발레단, V.bell mago(오승종)과 미디어아트 콜라보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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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br> 다시 읽는 ‘Song of Ariran' (4)님 웨일즈는 김산과 22차에 걸친 인터뷰 이후 중일전쟁 발발로 난징이 함락되어 활동이 여의치 않자 집필을 위해 중국 연안을 떠나 필리핀 바기오 섬으로 간 것이 1937년 말이다. 이후 집필을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가 뉴욕 존데이(Johnday) 출판사에서 ‘Song of Arirang’을 발간한 것은 1941년이다. 이 시기 아리랑사 국면에서 보면, ‘아리랑’은 이미 전형성(典型性)을 획득하고, 한국(한민족)이라는 공동체 아이덴티티 표출 기능을 하며, 다층성과 잠재성을 지닌 메타문화(meta culture)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 책의 헌사격인 ‘망명과 투옥과 국가적 굴욕을 담은 오래된 전래민요 5절 아리랑’이나 20여 회의 명징한 아리랑 진술들은 동북아시아 조선(Korea)의 국제적 질서를 담고 있다. 나아가 중국의 거대한 공산혁명 광풍 속에서 결코 바닷물 속의 소금 같이 녹아 버리는 존재가 아닌, 조국 혁명을 이루려는 한 조선 청년의 빛나는 투혼을 그려내기도 했다. 거기다 아름답고 슬픈 노래지만, 죽음을 넘고 넘어 끝내는 마지막 고개를 넘어가는 활화산 같은 열정을 추동하는 민중의 노래임을 발현해 냈다. 1930년대 말 동아시아적인 정황의 공식적이면서 지극히 비공식적인 탁월한 기억과 기록의 합체인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김산은 1930년 베이징 경찰에 체포되고, 이어 1933년 다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형을 산 것을 빌미로 1938년 캉성(康生)에 의해 트로츠키주파이자 일본 간첩이란 누명을 쓰고 총살당했다. 님 웨일즈는 남편 에드가 스노우(Edgar Snow, 1905~1972)와 17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이혼한 개인 사정으로 활동을 하지 못했고, 미국 정계의 반공주의 강세로 책은 묻히고 말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조선은 물론이고 일본과 중국 어디에서도 읽혀질 수 없었다.(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으나 마오쩌둥이 1949년 국공내전에서 승리하여 공산혁명을 이루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으로 극동의 교두보인 중국을 공산세력에 내주게 된다. 이에 미국에서는 매카시즘이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이 때문에 님 웨일스의 이 책은 미국 대중에게 보급될 수가 없었다.) 이 책은 3년 후에나 존재가 드러난다. 2차 대전이 후반기로 치닫던 1943년 그 해 7월, 김구선생은 장제스(蔣介石,1887~1975)를 만나기 위해 고단한 여정을 보내야했다. 장제스를 설득하여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의제화 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장제스는 11월 카이로(Cairo)에서 루즈벨트와 처칠과의 회담에서 종전 후 조선을 독립시킨다는 사실을 명문화 하였다. 그런데 이 회의에 참석한 루즈벨트는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 ‘Song of Ariran’을 읽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시 김구선생은 장제스와의 만남을 위해 오가는 과정에서 아리랑(광복군아리랑)을 불렀을 것이고, 루즈벨트는 낮선 ‘Ariran’에 의아(疑訝)해 했을 것이다. 이렇게 김구선생과 장개석와 루즈밸트는 역사적인 카이로회담(Cairo Conference)에 아리랑이 접속했던 것이다. 이 같은 아리랑은 빛나는 사실이다. 항일혁명 전선에서 그 열기를 북돋워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중경 임시정부 특별간행물 ‘중국혁명에 희생된 조선의용군 추도’에 당개 최고의 중국 시인 애청(艾靑)의 추도사에도 아리랑이 언급될 정도이다. 애청은 당시 ‘광서일보’ 편집자로 활동한 조선의용대원 김창만을 만나면서라고 했다. 1988년 발행된 ‘애청시선집’에서 "애청은 조선혁명가들에 대하여 경모의 심정을 품고 있던 가운데서 아리랑을 배워 근 5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가사를 잊지 않고 부른다.”라고 했다. 이어 다음과 같은 증언을 이었다. "우리는 주저 없이 스스로를 전쟁에 바치기로 맹세했다. 무한히 광대한 대지 위에서 우리와 중국의 형제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투쟁한 지 어언 5년이 되었다. 아리랑의 노래 소리가 화남(華南)에서 화북(華北)까지 울려 퍼지고, 우리의 족적은 중국 전장 곳곳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런 아리랑의 동지적 유대는 1935년 중국 공산당에서 음악적 명성을 얻은 정부은(정율성,鄭律成, 1914~1976) 같은 뛰어난 조선인 음악가에 의해 항일혁명 의지와 결합시키는데 성공한 결과다. 아리랑은 중국 형명군들에게도 조선의 힘 있는 노래라는 사실을 인식시킨 것이다. 바로 이런 정황들이 1930년대 ‘김산 아리랑’의 배경인 것이다. 한편 이 시기 만주와 조선과 일본 속의 또 다른 아리랑 상황은 이와 배치되기도 한다. 시대상이 직조한 탁류에 휩쓸리고 있었던 것이다. 1930년대 중반에는 엔카풍(演歌風)‘아리랑夜曲’이 일본과 조선에서 유행하고, 1940년에는 일본 히비야공원(比谷公園)에서 ‘한일합방 30주년 기념’ 행사에서 아리랑이 연주되었다. 만주에서는 총독부의 이주 정책 홍보를 위한 ‘만주아리랑’이 불렸고, 조선에서는 ‘애국아리랑’이나 ‘아리랑술집’ 같은 친일적이고 자폐적인 가요(歌謠)가 불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주아리랑’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얼시구 춤을 추네//젖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에/오족의 새살림 평화롭네”라는 정책 선전가(宣傳歌)이고, ‘아리랑술집’은 "눈물로 미뤄다오 한숨도 미뤄다오/조각달 내 신세가 타관에 두고//잔속에 노래 실어 부르자 부르자/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자탄가(自歎歌)이다. 뿐만 아니다. 총독부의 동원에 ‘악극(樂劇)류 아리랑’ 작품들이 여러 공연단체들에 의해 산업전선을 돌고 있었다. 이런 탁류에 비해 중국 연안 항일전선 상의 김산에게는 그 격렬함만큼 주옥같이 빛나는 아리랑이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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